haihm
(전자음악가)

“관찰에서 시작해서 규칙성을 발견하고 법칙을 만든 다음 그것을 토대로 검증과 실험으로 나아가는 것이 과학 연구의 기본이라고 한다. 연구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의 발전 과정을 설명하는듯한 이 방식은, 작게는 나의 작업 과정과도 닮아 있다. 작은 규칙성을 발견할 때 그것이 실마리가 될 수도 있고, 그저 관찰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이 될 때가 있다.”

*하임이 모듈러 신시사이서로 만들어서 보내준 음원이다.





첫 질문은 어릴 적 사운드스케이프에 관한 물음이다. 어떤 소리를 듣고 자랐나?

어릴 때부터 음악을 전공하면서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예술 학교에서 자주 공연을 보고 친구들이랑 합주하는 과정에서 음계와 화성학적 구조를 외우다시피 했다. 그러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인터벌(interval)에 대한 감각을 명확히 알고 인지하게 된다. 꼭 예술 학교를 다니지 않더라도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음악을 깊이 찾아 들은 사람들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저 음악을 듣는 행위만 해도 체험으로 알게 되는 것들이 있고, 그런 경험이 소중한 자산이 된다.

그렇게 경험한 음악 환경을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서양 고전 음악 교육인가?

관련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아버지께서도 음악을 하셔서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여러 음악에 노출되어 있었다. 어디를 가도 아버지가 팝 음악을 틀어 놓으셨고, 어머니도 노래를 즐겨 하셨다. 내가 피아노를 연주하기는 했지만,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는 친구들끼리 서로 좋아하는 음악을 엠피스리에 담아서 들려주기도 하면서 고전 음악이 아닌 여러 음악도 들었다. 그때 메탈리카가 한창 유행했다. 개인적으로는 일본 아이돌 음악도 많이 들었다.


피아노는 언제 처음 배웠나?

어릴 때 가볍게 쳐 보기만 하다가 6학년 정도에 레슨 선생님께서 피아노를 전공할 수 있는 학교를 권유해 주셨다. 1년 동안 열심히 준비해서 합격했다.

그 뒤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여러 인터뷰에서 유학 시절 이야기를 종종 했는데, 연습하면서 음악이 정말 좋다고 느낀 순간들이 있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감수성이 굉장히 예민하고 풍부한 시절에 타국에 있다는 외로움을 느꼈다. 그러다 어느 날 피아노를 치면서 이게 참 아름다운 음악이라는 걸 절실히 느꼈다. 기억나는 순간 중 하나가 밤에 잘 준비를 하면서 라디오를 트는데 피아노 협주곡이 나왔다. 아주 유명한 〈라벨 피아노 협주곡(Ravel Piano Concerto in G Major. 2nd: Adagio assai)〉이었는데, 서정적인 멜로디를 들으면서 아름다워 눈물이 났다. 물론 그 곡은 지금도 참 좋아하지만, 그때 여러 가지가 딱 맞아떨어져 감동적인 순간으로 남아 있다. 그 시절 기억 중에 선생님이 가장 많이 말씀하신 게 소리를 내는 방법, 팔과 몸을 어떻게 써서 소리를 내야 하는지, 의도하는 소리를 먼저 인지하고 건반을 만지는 방법 등이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연습하다 보면 간혹 정말 아름다운 소리를 찾게 된다. 음악도 음악이지만……그 순간이 소리에 근원적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아닐까 싶다.

그런 순간을 최근에도 느낀 적이 있나?

30대 초반까지는 있었다. 80년대 아트록 그룹 이니드(The Enid)의 브라이트 스타(Bright Star)를 들었는데 눈물이 날 뻔했다.

유학 도중에 피아노에서 대중음악, 전자 음악으로 방향을 바꿨다. 사실 서양의 클래식은 어느 시점에서 전자 음악을 만나게 되는데, 그런 영향도 있었나?

꼭 그런 이유는 아니다. 우선 유학 시절에 나는 소리 자체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깊이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시점에 윤상의 음악을 들었다. 그때 들은 음악에서 내가 생각하던 드럼 세트의 킥과 스네어 소리가 다른 소리들로 대체돼 있었는데, 그게 너무 좋았다. 아, 이런 식으로 할 수도 있구나. 클래식과 전자 음악의 접점에 대해서는 오히려 한참 후에 느끼게 됐다. 글리치(glich)나 이디엠(EDM) 같은 음악에 한창 빠져 있던 어느 날 오랜만에 드뷔시(Debussy)를 들었는데, 전자 음악의 구조랑 굉장히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드뷔시의 음악은 브라질의 조빙(Antônio Carlos Jobim) 같은 인물에게도 큰 영향을 준걸로 안다. 윤상 역시 소문난 브라질 음악 애호가다. 개인적으로 하임의 초기 음악을 들으면서 조빙의 음악처럼 화성과 멜로디가 세련된 전자 음악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요즘에는 점점 미니멀하고 글리치적인 스타일로 변하기 시작했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

사실 첫 데모를 윤상 씨에게 들려줬다. 그러다 만나서 같이 작업을 하게 됐고, 많은 영향을 받았다. 서로 취향이 아주 비슷하다 보니까 무슨 작업을 해도 정말 좋았다. 그런 인연으로 전자 음악 스타일의 가요 작업도 하고 솔로 앨범도 발표하게 됐다. 그러다가 점점 변화를 해야겠다고 생각이 드는 시점 찾아왔다.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개인 작업에 쏟을 에너지도 부족했는데, 더 늦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하임의 음악을 들어 보면 글리치적인 면과 앰비언트(ambient)적인 면이 모두 느껴진다. 장르적으로 보면 아주 다른 느낌일 수 있는데, 어떤 스타일에 매력을 느끼는가?  

나는 그냥 피아노 치던 사람이라서 처음 시작할 때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해서 하나씩 취향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사실 클래식과 전자 음악, 구체 음악이나 테이프 뮤직 같은 것도 나중에 알게 됐다. 그렇게 하나씩 찾아가다 보니 다양한 스타일이 섞이게 된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좋아한 화성적인 풍부함에 매료돼서 브라질 음악을 좋아한 시기가 있었고, 한편으로는 일본 아이돌 음악처럼 시퀀싱이 된 댄스 음악에도 호기심이 있었다. 그렇게 파고들다 보니 글리치에도 관심이 생겼고, 점점 취향이 깊어졌다.

그 시기에 영향 받은 음악을 간단하게 이야기해 줄 수 있나?

2000년대 초반에 일본 전자 음악을 많이 들었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YMO) 주변에 있는 뮤지션들이 귀여운 전자 음악을 많이 발표했다. 지금은 이름이 잘 기억 안 나는데, 독일의 글리치 음악, 유럽 쪽 전자 음악을 많이 들었다. 와이엠오에서 활동한 두 사람, 호소노 하루오미(Hosono Haruomi)와 다카하시 유키히로(Takahashi Yukihiro)가 낸 앨범들, 그리고 프랑크 브레트슈나이더(Frank Bretschneider), 테일러 디프리(Taylor Deupree), 알바 노토(Alva Noto) 등의 음악들을 좋아했다.

2022년에 발표한 음반 《Nowhere》에서는 굉장히 작은 단위의 진동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화성과 멜로디에서 시작한 음악의 여정이 소리의 알갱이로 이동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음반을 발표한 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 ‘소리가 알맞은 곳에 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지금 하는 작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운드는 무엇인가?

나라는 사람이 점점 심플하게 바뀌고 있는 것 같다. 가끔 2014년에 낸 앨범을 다시 들어보면 숨이 막힐 때가 있다. 나는 음악이 그 당시의 심리 상태를 나타낸다고 생각하는데, 그때는 정말 이제 내 거를 해야겠고 뭔가 파격적인 음악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보니 지금 그 들어보면 숨을 쉴 틈이 없다. 중요한 변화로 《Nowhere》를 발표하기 몇 년 전부터 차진엽 씨를 만나서 무용 음악을 시작하게 됐다. 무용 음악에도 물론 리듬이 들어가고 액티브한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더 중요하게는 흘러가는 배경이 돼야 한다. 음악보다 동작이 돋보여야 한다. 그전까지는 음악을 만들 때 음악이 주인공이니까 뭔가 변화를 줘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만드는 건 둘째 치더라도 시종일관 비슷한 흐름의 미니멀한 음악을 어떻게 듣고 있나 싶었다. 그러다 무용을 만나면서 조금씩 적응이 됐고, 음악에 힘을 빼게 됐다. 음악이 주인공이 아니어도 되고, 그냥 놔두면 여기서 변화들이 일어나는 거다. 무용 작업을 통해 많은 연습이 됐다. 차진엽 씨하고는 작업 면에서 정말 잘 통한다. 지금까지 계속 잘 이어 오고 있는 고마운 인연인데, 내가 마침 그런 고민을 할 때 그런 음악을 필요로 하는 작업자를 만나서 겪은 또 한 번의 변화가 《Nowhere》로 이어졌다.

그런 종류의 음악을 대하는 편견도 있다. 몇 개의 소리를 몇 십 분씩 길게 가져가니까 너무 쉽게 만든 거 아닌가 오해를 받기도 하고, 요즘에는 페달 하나만 누르면 바로 앰비언트 뮤직이 만들어지는 제품도 나오고 있다. 미니멀한 접근을 할수록 여기서 내 음악이 가진 고유성이 무엇인지 고민이 많을 것 같다.

그 고민을 첫 앨범 낼 때부터 많이 했다. 나 같은 경우는 아티스트가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소리를 고르는 출발부터 그 사람의 고유한 색깔이 드러나는 거라고 생각한다. 멜로디나 화성적인 진행을 만드는 작업이 아니고 말 그대로 사운드를 중요시하는 작업이 되면 될수록 음악가의 취향이 극명하게 드러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 나를 잘 아는 친구들이랑 협업하게 되면 나한테 항상 자기가 좋아할 법한 소리를 고른다고 얘기한다. 그런 호불호가 확실한 편이다.

좋아하는 소리를 좀더 설명해 줄 수 있나?

사인파 소리를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소리는 대체로 거기에서 파생된 소리다.

사인파는 배음이 없는 깔끔한 소리다. 하임의 성정에도 연결된 걸까?

어느 정도 맞는 것 같다.


혹시 사인파를 만들어 내는 오실레이터(발진기) 중에 선호하는것이 있나? 전자 음악 하는 사람 중에서도 특정 시기에 만든 특정 장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컴퓨터와 프로그램만으로 끝내는 사람도 있다. 음악 만드는 툴에 관한 질문이다.

특별히 선호하는 오실레이터가 있지는 않다. 예를 들어 나는 이런 타입이다. 어떤 악기를 사면 매뉴얼부터 읽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우선 프리셋부터 막 들어본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소리가 있으면 곡을 쓰기 시작한다. 전자 음악을 한다고 하지만 전자 음악의 기원과 초기 환경에 큰 관심은 없고, 계속 곡을 쓰는 데 집중하는 쪽이다. 프리셋에서도 조정할 수 있는 여지가 정말 많아서 마음에 드는 소리에서 출발해 수정하는 방식을 주로 쓴다. 디지털 오디오 워크스테이션(DAW)은 에이블톤, 악기 중에는 리액터를 제일 많이 쓰는 것 같다.

개인적인 궁금증인데 피아노를 비롯해 어쿠스틱 악기를 연주할 때는 악기에 연결된 연주자의 신체가 중요하지 않은가? 호흡이나 자세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기도 한다. 전자 악기를 다룰 때도 그런 관점이 적용될 수 있을까?

몸의 자세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에너지 상태하고는 관계가 있는 것 같다. 그때 내가 가지고 있는 정서와 기분에 좌우되는 것 같다. 어떤 때는 이 소리를 내가 어떻게 만들었을까 싶어서 똑같이 만들어 보려 해도 다시는 못 만드는 소리가 있다.

전자 음악은 기술의 진보에 밀접하게 연결돼 있고 그런 쪽으로 전문가도 많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흐름을 따라가려 노력하는가?

필요한 범위 안에서 공부를 하기는 해야 한다. 여러 가지 툴을 쓰는 사람을 보면 나도 호기심이 생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음악을 만드는 게 가장 재미있는 것 같다.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서 또 다른 영역으로 나아갈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공부는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요즘 뭐가 좋고 사람들이 많이 쓴다고 무조건 따라가려고 하지는 않는다.

라이브 공연 이야기를 해보자. 음악을 만드는 과정과 그 음악을 라이브로 연주하는 일은 또 다르다. 라이브 퍼포먼스를 할 때는 어떤 준비를 하나?

라이브에서 내가 건반을 치지는 않기 때문에 고민이 있기는 하다. 그동안은 준비한 클립들을 믹스하는 식이었는데, 얼마 전부터 모듈러 사용도 고민하고 있다.

무용 작업을 할 때 컴퓨터 앞에서는 어떤 일을 하는가?

실시간으로 에디팅을 할 때도 있다. 그런데 무용 공연에서는 약속이 필요한 지점들이 있어서 주로 큐에 맞춰서 음악을 트는 일을 한다.

요즘은 전자 음악을 하면서 오디오 비주얼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쩌면 전자 음악으로 무대 위에서 보여 줄 수 있는 퍼포먼스를 고민하다가 영상에 많이 의존하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개인적으로는 청각보다 시각이 중심이 되는 공연을 경계하는 편인데, 얼마 전 단독 공연에서 영상이 아니라 향을 사용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한때 오디오 비주얼 아티스트를 좋아한 적이 있고, 그런 걸 잘하는 아티스트가 정말 부럽던 적도 있다. 지금은 내 영역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잘하는 사람이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시각적인 것이 강할 때는 사람들이 오히려 금방 판단을 내리게 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 작업에서는 비주얼을 조금 덜어내고 소리가 좀 더 집중되기를 원한다.

마지막으로 동시대성을 이야기해 볼까 한다. 예술가들은 언제나 동시대성을 요청받는다. 하임은 자기 활동 안에서 컨템퍼러리라는 단어를 어떻게 소화하고 있는가?

얼마 전 무용 피디님이랑 잠깐 이 질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무용 쪽에 있는 사람들은 개념적인 것을 텍스트화하는 작업에 좀더 익숙한 것 같다. 내 경우는 음악을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면서 개념을 도출하거나 의도를 정리한 뒤에 음악을 만들지는 않는다. 그분하고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내가 되게 개인적인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상황과 환경에 영향을 안 받는 건 아니지만 모든 답을 항상 내 안에서 찾은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많이 들어 온 음악들이 결국에는 내 안에서 데이터베이스가 되고, 그 안에서 또 내가 좋아하는 것이 생겨나서 카테고리가 만들어진다. 내가 음악을 만들 때 그런 것들이 하나하나 꺼내질 텐데, 나에게는 그것이 동시대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구성하고 있는 많은 것들은 그동안 사람들하고 관계하면서 영향을 받은 것이고, 당연히 시대적인 영향을 받아서 발생한 것이다.

좋아하는 소리는 이야기했는데, 혹시 싫어하는 소리도 있나?

칠판 긁는 소리가 제일 싫다.

만약 무의식에서 들리는 소리를 수음하는 마이크가 있다면 어떤 소리가 녹음될 것 같은가?

그냥 느낌으로 이야기해도 될까? 슬픈 소리일 것 같다. 개인적인 이야기이기는 한데, 내가 뭔가를 계속 만들고 살아가는 동력이 슬픔인 것 같다. 마음속 깊이 있는 슬픔이라는 감정 덕분에 이렇게 감정적인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슬픔이 가져다주는 굉장히 아름다운 것들이 많다는 생각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