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아이를 키우다 보니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중학생이 된 아이와, 목소리로 녹음된 아기는 같은 사람인데, 사는 시간은 다르다. 일반적으로, 동영상을 보는 것보다 녹음된 목소리를 듣는 게 훨씬 더 그 목소리의 주인이 살아있는 것 같다. 따라서 나에게 '비동시대성'을 "Bi-동시대성'이라 부를 수 있는 권리가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 어차피 옛날부터, 마치 다성음악과 같이, 시간은 여러 층이 동시에 흘러가고 더불어 세상도 그렇게 돌아간다고 생각해 왔다.”
어떤 소리를 들으며 유년기를 보냈나?
집안에 사고가 많았는데, 그 사고 현장에서 들은 소리가 잊히지 않는다. 예를 들면 내가 다섯 살 때 동생이 태어나자마자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적이 있는데, 그때 어머니, 아버지가 안 계셔서 할아버지가 다급하게 나를 부르고 나랑 내 밑의 동생이랑 같이 뛰어간 기억이 생생하다. 어릴 때부터 그런 일들이 많다 보니 집안이 평온하지 않을 때 들은 소리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심리학자들은 그걸 트라우마라고 할 텐데, 뭐 상관없다. 심지어 어제도 오늘 새벽에도 환청 같은 거를 들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나를 부르는 것 같은 소리를 들었다.
긴박한 감정을 일으킨 소리겠다.
비극적이라고 해야 하나. 쉬운 말로 하면 안 좋은 일이 생길 때 난 소리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유년기를 지나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잊을 수 없는 청각 경험을 한 순간이 있다면?
다 개인적인 거다. 우선 첫 번째는 어머니의 음성이다. 두 번째는 프랑스 남부에 있는 토로네 수도원(Abbaye du Thoronet)에서 들은 소리다. 유럽에서 고음악을 녹음할 때 선택하는 장소 중 하나인데, 거기서 겪은 음향 체험이 정말 대단했다. 거기서 노래를 부르면 노래가 공간에 한참 동안 돌아다닌다. 나도 한 번 해봤는데, 일단 소리를 내면 지속 시간이 굉장히 길어서 그 소리 위에 내가 또 다른 소리를 낼 수가 있다. 그래서 혼자 여러 화음을 내봤다. 이미 내가 낸 소리 자체에 배음렬이 있어서 그거에 맞춰서 잘 불러야 한다. 그곳에서 화음을 내보면서 ‘아, 이런 식으로 다성 음악이 발전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세 번째는 대우 산업기술연구소 무향실(anechoic chamber)에서 한 경험이다. 원래 음향 연구가 목적이 아니라 층간 소음 문제를 해결하려는 연구소인데, 거기서 아무도 없이 혼자서 소리를 내봤다. 아까 말한 프랑스 토로네 수도원하고는 정반대 상황으로, 모든 울림이 사라지고 정말 내 몸에서 나는 소리만 남게 된다. 굉장히 이상하고 정말 외로운, 어떤 독특한 체험이었다. 우리가 보통 일반적이라고 생각하는 상태가 결국 어느 정도 소리의 울림에 의존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활발하게 극음악 작업을 하는 작곡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연희단 거리패랑 함께한 작업으로 연극을 처음 시작하게 된 것으로 아는데, 클래식을 작곡하다가 극음악에 매력을 느끼게 된 사연이 궁금하다.
우선 교회 때문이었다. 어릴 적부터 손봉호 교수님께서 창립하신 교회에 다녔는데, 그곳이 기독교 윤리 실천 운동도 하고 장애인 운동도 하는, 사회 참여적인 성향을 가진 곳이었다. 교회 분위기가 그러다 보니 내가 클래식 음악 한다는 게 뭔가 사치같이 느껴졌고, 내가 너무 세상이랑 동떨어진 음악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 대학 시절에도 주변에 운동권 친구들을 보고 기독교 서클 활동을 하면서, 나는 뭘 할 수 있을지 소극적인 고민을 하면서 보냈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산울림소극장에서 연희단 거리패가 공연한 〈바보각시〉를 봤다. 거기서 세 가지에 매료됐다. 첫째는 굉장히 음악극 같았다. 일단 그 당시에 만연하던 서구 리얼리즘 연극이랑은 매우 달랐고, 공연 예술의 많은 부분이 종합돼 있어서 이런 거라면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는 작곡하면서 한국 전통에 관한 어떤 부담감 같은 게 있었는데, 연희단의 배우들은 음악적인 전문가는 아니더라도 전통 음악을 사용하면서 굉장히 호소력 있는 소통을 하고 있었다. 그런 데 매료가 됐다. 셋째는 내가 부족하다고 느끼던 사회 참여적 이야기를 예술 작품을 통해서 하고 있었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던 그 세 가지가 예기치 않게 연희단 거리패의 작품 안에 다 있더라. 그때부터 인연이 시작됐는데, 그 뒤로 그 집단이 불명예스러운 일로 사라지면서 인연도 끝났다.
대학에 재직하는 작곡가들은 대부분 현대 음악 작업을 많이 해왔는데, 최우정이 만든 극음악을 보면 조성이 분명하고 대중적인 곡이 많다. 처음 그런 작업을 발표할 때 부담은 없었나?
별로 없었다. 일단 내가 클래식을 그만둔다고 하고 극음악을 시작한 거라 별로 괘념치 않았다.
지금까지 연극과 오페라 작업을 많이 해왔다. 초기 작과 최근 작에서 관점이 어떻게 변화했나?
아무리 내가 음악을 잘 써도 그 이야기는 결국 남의 이야기더라. 사실 그래서 최근에는 극음악에 흥미를 좀 잃어버렸다.
그러면 이제 자기 이야기를 할 준비를 하고 있는가?
요즘 계획하는 프로젝트가 하나 있다. 근데 사실 이것도 남의 이야기를 잘 듣는 거기는 한데, 어떤 프로젝트냐면 사라진 목소리들, 아니면 잘 안 들리는 목소리들, 그런 목소리들을 다시 세상에 들려주는 프로젝트다. 이를테면 내가 있는 대학 안에도 목소리 없는 사람들이 되게 많다. 그런 사람들 인터뷰를 따고, 사연을 모으고, 그 사연을 담은 노래를 만들어서 공연을 하는 프로젝트를 하려고 한다. 근데 여기서 ‘남’은 정말 내가 모르는 ‘남’이다. 그런 남들의 이야기는 좋다. 나랑 비슷한 작가들 이야기를 더 하고 싶지는 않다. 이미 목소리가 큰 사람의 목소리를 더 크게 만들어 주는 작업이 하기 싫어졌다.
계속 연극적인 연출이 떠오른다.
같이 해볼까? 옛날에 30대, 40대 때는 되게 일찍 학교에 왔다. 나는 대중교통 타고 다니는데 다섯 시에 학교에서 일하는 분들로 버스가 꽉 찬다. 그런데 그분들은 또 퇴근을 빨리 한다. 그분들이 유령처럼 한 번 오고 가면 학생, 직원, 교수들이 오는 거다.
극음악 작업을 오래 했지만, 사실 현대 음악 작업도 꾸준히 했다. 현대 음악 전문 연주 단체인 ‘앙상블 TIMF’의 예술 감독을 오래 맡기도 했다. 현대 음악에도 어떤 애정과 책임감이 있었나?
애정보다 책임감이 더 컸다. 그래서 힘들었다. 레너드 번스타인(Lenonard Bernstein)이 한 말을 인용하면, 클래식 음악이라는 게 알고 보면 작곡가가 디테일까지 적은 악보를 연주자가 연주해서 들려주는 엄격한 음악이다. 그런 경향이 더 극단적으로 간 게 클래식 현대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반작용이 있어서 즉흥이나 전자 음악 같은 다양한 실험이 등장했지만, 전반적으로는 서양 근대 정신의 산물인 클래식 음악의 맥락 위에서 실행된 창작 활동이 20세기 현대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음악은 2010년 정도에 거의 막을 내렸다고 생각한다. 2010년부터 ‘앙상블 TIMF’를 하면서 느낀 변화인데, 우선 음악을 접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즈음에 유튜브를 구글이 인수하고, 페이스북 코리아가 생기고, 아이폰도 나왔다. 그때부터 옛날이랑 정말 다른 환경이 만들어졌다. 어쩌면 클래식 음악에서 진짜 21세기는 그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한 작곡가 개인이 계몽적인 태도를 가지고 무슨 잃어버린 감수성을 일깨워 준다거나, 음악보다 작곡가 이름을 더 많이 아는 그런 음악은 이제 설 자리가 없어진 것 같다.
클래식 음악에서 달라진 환경이라는 말을 좀더 자세하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
클래식 음악 산업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도이치 그라모폰이라는 음반사에서 한 10년 전부터 막스 리히터(Max Richter)나 요한 요한슨(Jóhann Jóhannsson) 같은 뮤지션들 음반을 발매하기 시작했다. 뭔가 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최근에는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나 히사이시 조(Joe Hisaishi)의 음반이 나왔다. 옛날 같으면 도이치 그라모폰이 생각하지 않을 이름들이다. 여전히 유럽의 학교 시스템이나 많은 작곡가가 20세기 식으로 현대 음악을 작곡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제 메이저 음반사에서는 아무 곳도 그런 음반을 제작하지 않는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아주 많은 것이 설명되는 거 같다. 어떻게 보면 클래식 음악이라는 것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하나의 상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산업적 측면에서 보자면 클래식 음악이란 사실은 좀더 고상한 옷을 입은 필수 교양으로 상품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런 음악들이 지닌 가치를 부정하지는 않는데, 그 가치 자체를 상대화할 수 있는 경험을 우리는 한 번도 못 해봤다. 이미 가치가 매겨진 상태에서 음악이 받아들여진 거다. 거기서 가치 있는 음악은 다 유럽과 미국의 음악이었고. 우리가 그런 가치들을 좀더 상대화하고 외국 음악이라고 해도 서구 중심이 아니라 다른 지역 음악도 통합적으로 교육해야 하지 않는가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아프리카 리듬도 배우고, 그런 식으로 자라다 보면 나중에 새로운 것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대 음악에 관련된 논쟁 중에 현대 음악은 고도의 지적 활동이어서 청자가 중요하지 않다는 견해도 있었다. 학교와 제도가 보호하고 지원해야 할 일종의 순수한 연구 활동에 가깝다는 말인데, 최우정은 청자를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청자는 중요하다. 사람들이 듣지도 않고 연주도 되지 않는 음악이 너무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물론 연구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꼭 음악가뿐 아니라 다양한 학제의 연구자들이 모여서 음악을 연구하는 건 필요하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는 곳들이 많다.
작곡 이야기로 넘어가자. 2013년 작곡가 신동훈과 함께한 인터뷰를 봤는데, 작곡가는 기법을 숙련하는 데 집중해야 도그마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어떤 사조에 경도되는 위험성을 경계한 것 같다.
그때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건지 잘 모르겠는데, 지금 작곡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일단 학생들에게 하루에 적어도 다섯 마디는 꼭 쓰라고 한다. 다섯 마디 쓰는 건 사실 되게 쉽다. 쉼표만 다섯 개 그려도 음악인데, 학생마다 자기가 생각하는 작곡이라는 게 정해져 있어서 그걸 잘 못한다. 이를테면 서울대 작곡과는 현대 음악을 해야 되니까 리게티 등 현대 음악의 대가들이랑 비슷하게 해야 된다, 뭐 이렇게 못이 박혀 있는 거다. 내가 하는 요구는 그런 걸 빼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장인이 매일매일 습관적으로 제품 만들듯이 시간 정해 놓고, 마치 운동선수처럼 계속하라는 의미다. 그걸 나중에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자연스럽게 그 안에 녹아들어 있는 특정한 경향, 고집, 편견이 나타난다. 그러면 그걸 객관적으로 보는 거다. 사람에게 도그마라는 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근데 땀을 흘려야 독소가 빠져나가듯이 내가 어떤 도그마에 빠져 있는지 알고, 걷어내고, 상대화하고, 그러는 과정에서 좋은 작곡을 할 수 있는 거다.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만, 생각 없이 하는 작곡이라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 든다. 실제로 최우정 역시 작업을 하면서 관련된 공부를 많이 한다고 알고 있다. 생각하지 않고 하는 작곡과 공부하면서 하는 작곡이 모순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일단 처음 단계에서는 생각 없이 시작하는 게 좋다고 본다. 왜냐면 정말 시작이 반이더라. 클래식 작곡 쪽은 어떤 한 음을 쓰기 위해, 또는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너무 많은 생각을 한다. 그러지 않고 일단 오선지에 음부터 몇 개 적다 보면 그다음부터 생각이 날 수밖에 없다. 즉흥이랑 똑같은 거다. 생각 없이 시작한 다음, 거기서 발견하고 공부하며 생각하는 과정이 계속 반복돼야 한다.
최우정의 음악 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전통 음악이다. 가장 좋아하는 음악으로 가곡과 정악을 꼽기도 하는데, 최우정에게 전통 음악을 향한 애정이 어떻게 생겨난 건지 궁금하다.
고 3 때 친구가 윤윤석 아쟁 산조 테이프를 줘서 들었고, 그때부터 김소희, 조공례, 박병천 이런 분들의 구음을 들으면서 전통 음악에 빠지게 됐다. 그러다 윤이상의 음악을 공부하면서 그 유령 같은 개념인 ‘한국적 정체성’을 찾아보겠노라고 이것저것을 뒤져 봤는데, 이른바 ‘한국적 정체성’을 추구한다는 클래식 말고 그냥 오리지널 전통 음악이 훨씬 좋더라. 그 뒤로 극단 작업을 하면서 다양한 전통 음악인들을 만나게 됐다.
전통 음악을 향한 관심에도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인데, 음악 교육에서 서양적 관습을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종종 했다. 그게 왜 중요한지 좀더 듣고 싶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면, 도와 도# 사이에 숱한 음이 있는데 서양 음악만 배운 사람들은 결국 그 사이에 있는 소리를 경험하지 못하고 죽을지도 모른다. 반면 인도에서는, 예를 들자면, 바이올린을 토착화하는 과정에서 미세한 음들을 굉장히 풍부하게 다루고 있다. 음악가로서 그 차이를 인지한다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2020년 서울디지털포럼 〈페르마타: 멈춤〉에서 듣는 것이 생존에 결정적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 인터뷰 프로젝트에서도 태초의 소리를 인간의 생존과 연관 지은 사람이 있어서 더 인상적이었다. 듣기라는 행위도 일종의 문화적 훈련일 텐데, 우리가 회복해야 할, 또는 훈련해야 할 실천으로서 듣기란 어떤 게 있을까?
사실 그 부분에서 나는 굉장히 비관적이다. 한 달쯤 된 이야기다. 교문에서 버스 타고 봉천동으로 넘어가는데, 기사가 앞에 몰려 있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라고 말했다. 근데 아무도 그 소리를 안 듣더라. 다른 어느 학교를 가봐도 그렇다. 한번은 내가 답답해서 몇 번 이야기를 한 적도 있는데, 알고 보니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 때문에 목소리를 못 듣는 거였다. 거기서 완전히 충격을 받았다. 노이즈 캔슬링을 하고 살면 일단 직접적으로 생존에 위험하다. 물론 그런 문제들은 기술 발전을 감안하면 해결이 되기는 할 거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서로 듣지 않는다면 결국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관계라는 게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야만 성립하는 거다.
이 인터뷰는 동시대성에 관련된 질문을 소리에서 찾아보는 작업이다. 최우정이 생각하는 동시대성이란 무엇인가?
일단 음악과 소리의 경계가 없어진 것 같고, 그게 동시대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베토벤의 음악도 지금은 일종의 ‘가구 음악(furniture music)’으로 기능이 바뀌어 버린다. 음악이 소음처럼 돼버린 세상이다. 예전부터 현대의 작곡가들은 자꾸 소음을 음악화시키려 했는데, 지금 세상의 키워드는 반대로 음악의 소음화라고 생각한다.
동시대성에 연결된 질문일 수 있는데, 그래도 우리가 과거의 음악과 기법에서 여전히 배워야 할 것들이 있을까?
어떻게 보면 다시 회복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19세기 말까지는 괜찮은데 20세기 초중반부터 나온 작품들을 볼 때 몇몇 예외를 빼면 연주하고 너무 분리돼 있다. 그러다 보니 현재 많은 작곡가들은 실제 소리가 나는 어쿠스틱한 환경을 겪은 경험이 너무 부족하고, 실제 내용으로 받아들여지는 소리와 기호로서 이해되는 소리를 착각한다는 느낌이 든다. 서양 클래식 음악에서 20세기 초반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100년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음악 전통은 다 연주자와 작곡자가 합쳐져 있었다.
마지막은 상상력이 필요한 질문이다. 내 안에 쌓여 있는 소리들이 녹음될 수도 있는 녹음기가 존재한다면 최우정에게서 어떤 소리가 녹음될 것 같나?
몽골의 흐미 창법까지는 아닌데, 목소리로 여러 배음을 내는 연습을 자주 한다. 세계의 다양한 음악을 많이 들었는데, 결국 다양한 스펙트럼의 소리가 사람의 몸 안에 다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집에서도 그렇고 공중목욕탕에 가면 맨날 그런 소리를 내본다. 몸에서 느껴지는 자연적인 소리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들어 오고 불러 온 소리들, 그런 소리가 녹음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