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
“홍성에서 녹음한 기계음.”
인터뷰는 본인의 소리 경험에서부터 시작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본인에게 중요했고 잊지 못하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있다면 들려달라.
피아노 선생님이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피아노 소리를 많이 들었던 게 좋든 좋지 않든 영향을 많이 준 것 같다. 태어날 때부터 계속 피아노 소리를 계속 들어서 많이 질리기도 했고 배우기 싫어서 도망다닌 적도 많다. 그래도 덕분에 서양의 음계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사운드스케이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1990년대 후반부터다. 소리풍경에 관심이 있어서 DAT 녹음기를 들고 녹음을 다닌 게 벌써 한 25년 정도 됐다. 그렇게 녹음하러 다녔을 때가 기억이 많이 난다. 마이크가 내 입만을 향하다가 남들과 세상을 향하게 된 것이 나에게는 굉장히 특별한 체험이었다. 2000년쯤에 이집트와 그리스 여행을 다니면서 녹음한 소리도 있는데 그걸 들어보면 그때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면서 소리를 기록한다는 것이 참 특별한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또 한 가지 기억은 부산에 가서 가야금 하시는 신명숙 선생님의 목소리를 녹음했던 거다. 그분이 강태홍 명인의 마지막 직계 제자인데 그 분과 인터뷰를 하면서 국악에서 구음이 얼마나 중요한 전승방식이었고 그것이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변질되었는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 인터뷰를 계기로 가야금 연주자 고지연씨와 가야금과 구음에 대한 작업을 하기도 했다.
현재 미술작가로도 주목받고 있지만 여러 매채와의 인터뷰에서 밴드를 했던 음악가로서의 정체성이 본인의 작업의 기본적 태도라는 이야기를 했다. 본인이 생각하는 음악가적인 태도 혹은 관점이란 어떤 것인가?
나는 음악은 혼자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기계의 도움을 받아서 혼자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음악은 기본적으로 함께하는 것이 전제가 되고 그때 내가 경험한 밴드라는 형태에 가장 이상적인 협업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밴드 활동 이후에도 누구랑 협업하는 일을 하고 있긴 하지만 밴드를 하던 시절에 소리를 통해 소통하고 합을 맞추고 했던 창작 방식에 큰 감명을 받았다. 혼자하는 것이 아니고 혼자만을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그 안에 진짜 예술의 요체, 예술 창작의 요체가 있다는 깨달음이었던 것 같다. 음악을 하면서 생기는 공평한 관계도 좋았다. 그렇지 않은 밴드들도 있겠지만 흔히 밴드라고 하면 서로 공평한 입장을 가지고 수입도 공평하게 나누는 굉장히 독특한 협업형태를 가지고 있다. 서열을 벗어나 공평하게 대화했던 경험들을 이후에도 곱씹게 된다. 또 음악가의 태도 중에서 끝을 보고 달리는, 멈추지 않는 광기 같은 것들도 예술가에게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그때 많이 느끼고 배웠다.
국립현대 미술관 2023년 <올해의 작가>전 인터뷰 영상에서 본인은 평생 하나의 작품을 만들고 있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집에 오면서 원더버드 1집을 다시 들었는데 전시장에서 만난 작품의 제목들이 노랫말로 들렸다. 평생 만들고 있는 하나의 작업이라는 말이 순간 이해되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타자’, ‘이방인’에 대한 작업을 많이 해왔는데 평생 가지고 갈 작업의 테마라고 볼 수도 있는가?
지금까지 굉장히 많은 부분을 이방인이라는 주제에 할애해왔다. 이방인은 결국 경직된 한국 사회에 대한 이야기다. 한국은 이방인에 대해 굉장히 폐쇄적인 사회이고 지금도 더 폐쇄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서 그 얘기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효과가 없으니 더 자극적으로 해보겠다고 하다가 로봇까지 간 건데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로봇은 앞으로 계속 생길 거고 우리와 함께할 이웃 같은 거다. 지금은 로봇 청소기와 식당 서빙, 이 정도지만 집에 몇 개의 로봇들이 같이 있고 반려 로봇과 함께 살아가는 그런 때가 몇 년 안에 올 거라고 본다. 그런데 사람들이 로봇에게는 오히려 정을 쉽게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내 말 잘 듣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하니까. 아무튼 이 한국인의 배타성에 대해서는 계속 다룰 주제 같긴 하다. 물론 다른 주제들도 다루게 될 수 있다.
인디씬을 포함해서 대중음악계에서 활동하던 선배 음악가들을 보면 연차가 쌓이면서 프로듀서나 제작자가 되거나 영화나 드라마 음악감독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주변에 그런 동료들도 많이 있었을 텐데 권병준은 좀 더 실험적인 예술가의 길을 갔다. 언제나 주류의 규칙에서 벗어나고자 했다는 인터뷰를 본 적도 있는데, 어떤 갈증이 있어서 작가로서의 길을 가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록 음악에서도 명인이나 인간문화재처럼 자기가 잘 아는 거를 계속 반복하면서 그 모습 그대로 거기에 남아 있는 것이 미덕인 경우가 있다. 근데 내가 배운 음악은 그런 게 아닌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훌륭한 음악가들은 언제나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다 대부분 일찍 죽긴 했지만 그것도 뭔가 한계를 넘어서려다가 폭발한 게 아닐까 싶다. 그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내가 예전에 하던걸 우려먹으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 그게 음악의 정신, 록음악의 정신이 아닐까 생각한다.
유학을 가서 음악과 관련된 테크놀로지를 배웠다. 전통적인 작곡이나 연주가 아닌 기술적인 부분들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있었나?
기술과 결합한 음악, 이를테면 컴퓨터를 가지고 전자음악을 만드는 실험은 그 전부터 계속 해오긴 했다. 그걸 좀 더 체계적으로 공부를 해보고 싶어서 유학을 갔다. 근데 막상 가보니 그런 음악도 이미 서양 현대 음악의 한 부류로 정착이 되어서 또 다른 주류로 자리 잡은지 오래여서 그런 부분들에 좀 답답함이 있었다. 그런건 내 기질상 맞지가 않더라. 기술을 좀 더 다른 방향으로 확장하고 넓히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독일의 스타임(STEIM)에서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있었던 분과의 이름이 예전에는 Image and Sound였는데 그게 Art and Science로 바뀌었다. 처음엔 시각과 청각에 대한 작업 위주로 하다가 점차 기술과 결합된 공감각적인 작업이 본격화 되던 시기였다. 그러다 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그런 작업들을 하게 된 것 같다.
스타임(STEIM)에서 하드웨어 엔지니어로 일하고 로봇 작업도 오래 하셨는데 그런 이력만 보면 도저히 범접하기 어려운 기술로 보인다. 하지만 작업을 자세히 살펴보면 오히려 구하기 쉬운 재료들로 접근이 편한 기술들을 사용한다는 느낌도 받는다. 재료와 기술을 선택하는 본인의 관점에 대해 이야기 해줄 수 있나?
사실 기술의 범위는 끝이 없고 모든 기술을 공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테크놀로지를 다룬지 20년 정도가 되었는데 아직도 해야 할 게 많고 한참 멀었다. 하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작업은 기술의 향연이 아니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는 것인데 그건 단지 기술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다. 전시든 공연이든 간에 여러 가지 기술이 어떻게 적절히 조합되고 그것이 어떻게 제어 가능한 수준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교육과 지식을 나누는 일에도 관심이 있는데 내가 함께 일하고 있는 친구들이 기술적인 배경이 없어도 보고 만들고 수리할 수 있을 정도로 설계를 하려고 한다. 사람들이 접근 가능하고 또 그 안에서 뭔가를 해 볼 만한 여지를 남겨두는 것도 고려의 대상이 된다. 물론 위치 기반 헤드폰처럼 쉽게 수리하기 어려운 기술도 있긴 하다. 아무튼 화려한 기술보다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적정 기술을 적재적소에 잘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021년에는 부산 시립미술관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소리 작업을 하기도 했다. 어린이를 위한 소리 작업을 할 때는 어떤 부분들을 고민했는지 또 실제로 어떤 경험을 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듣는 것도 훈련이 필요한 일이고 음악 교육은 소리를 어떻게 들을 것인지에 대한 것을 포함한다. 그런데 요즘 어린이는 생각보다 빠르게 듣는 방법을 잃어 버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예전에 어떤 워크샵에서 어린이에게 헤드폰으로 지리산에서 녹음한 소리를 들려준 적이 있다. 한적한 마을에서 개도 짖고 새도 울고 하는 자연의 소리였는데 무슨 소리가 들려냐고 물어보니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고 했다. 어린 아이에게도 그 소리는 벌써 무시할 수 있는 아무 소리도 아닌 게 된 거다.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의 아이였는데 그 때만 돼도 벌써 미디어에 노출이나 여러 교육들로 원래 가지고 있던 감각들을 잃어 버린다. 그래서 부산에서 작업할 때는 더 어린 친구들을 타겟팅 했었다. 그 친구들을 위해 여러 개의 스피커를 이용해 입체음향을 만들어 들려주는 작업을 했는데 어른들 보다 더 유심히 잘 듣는 아이들 있었다. 더 어린 아이들의 귀는 아직 열려있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은 필드 레코딩에 대한 질문이다. 여행을 다닐 때 언제나 녹음기를 가지고 다닌다고 했는데 그때 녹음기를 켜는 순간은 언제인지, 마주하는 수 많은 소리들 중 기록할 만한 소리라는 건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자연의 소리에 제일 많이 반응하는 것 같다. 자연 속에서 나는 계속 동심으로 돌아가는 기분을 받는다. 어린 아이가 되어 꽃 주변의 벌을 만나면 그 소리를 녹음하고 있고 폭포를 만나면 그 소리를 녹음하고 있다. 자연 속에서는 계속 그런 마음으로 마이크를 열어놓게 된다. 어떤 곳에서는 도시에서도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가 있다. 예를 들면 이제 대만에서 물소리를 녹음했는데 그게 에어콘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대만은 너무 더워서 집집마다 에어콘을 틀어놓는데 거기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그 도시를 특징짓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현대의 많은 예술가들은 저마다의 기법과 재료들로 자신의 문제의식, 질문을 던지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사운드가 하나의 기법이자 재료로서 동시대 예술에 분명한 인정을 받게 된 것 같다. 권병준 역시 사운드아티스트로 종종 소개되는데, 예술에서 소리가 할 수 있는 역할, 더 잘할 수 있는 질문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가?
소리는 시각적인 것의 대척점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리는 시각적인 것과 우리에게 들어오는 방식이 다르다. 좀 더 직접적으로 마음을 움직인다고 해야하나. 머릿속에서 만들어 놓은 필터나 장치를 거쳐서 들어오는 게 아니고 뭔가 이렇게 쑤욱 들어오는 느낌이다. 또 사람한테는 또 언어의 벽이라는 게 존재하지만 소리에는 말로 할 수 없는 중요한 소통의 가능성이 있다. 어떤 때는 그 말로 할 수 없는 게 굉장히 중요하기도 하다. 창작과정에서는 말을 잘한다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다. 말이 가지고 있는 소통의 한계, 또 시각적인 것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맹점들을 피해서 사람들에게 자신을 돌아보게 할 수 있는 힘이 소리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들은 지금 시대에 굉장히 유효한 일이고 앞으로도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기에 소리에 대한 작업 또한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권병준이 생각하는 지금 현 시점에서 주목할 만한 시대적인 소리가 있는가? 혹은 개인적으로 최근에 주목하고 있는 소리가 있는가?
작업실에 늘 3D 프린터들이 돌아가고 있는데 요즘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생각을 하곤 하다. 어떤 형태를 인쇄하냐에 따라 모터의 움직임이 달라지고 그게 패턴화가 돼어 리듬이 만들어진다. 동그란 모양을 인쇄할 때, 사각형을 인쇄할 때가 소리와 리듬이 다르다. 거의 하루종일 저 소리들을 듣고 있다 보니까 이제는 저 기계들이 내는 소리가 노동요처럼 들린다. 언젠가 저 소리를 가지고 작업을 해봐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공식적인 마지막 질문이 남았다. 약간의 상상력을 요하는 질문인데 이 인터뷰는 음악가에 대한 필드 레코딩이라는 가정을 하고 있다. 어떤 사람에게서 나는 소리를 녹음할 수 있는 마이크가 존재한다면 권병준에게서는 어떤 소리가 녹음될 것 같나?
휘파람, 혹은 음울한 읊조림 같은 게 들릴 것 같다.
인터뷰는 본인의 소리 경험에서부터 시작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본인에게 중요했고 잊지 못하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있다면 들려달라.
피아노 선생님이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피아노 소리를 많이 들었던 게 좋든 좋지 않든 영향을 많이 준 것 같다. 태어날 때부터 계속 피아노 소리를 계속 들어서 많이 질리기도 했고 배우기 싫어서 도망다닌 적도 많다. 그래도 덕분에 서양의 음계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사운드스케이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1990년대 후반부터다. 소리풍경에 관심이 있어서 DAT 녹음기를 들고 녹음을 다닌 게 벌써 한 25년 정도 됐다. 그렇게 녹음하러 다녔을 때가 기억이 많이 난다. 마이크가 내 입만을 향하다가 남들과 세상을 향하게 된 것이 나에게는 굉장히 특별한 체험이었다. 2000년쯤에 이집트와 그리스 여행을 다니면서 녹음한 소리도 있는데 그걸 들어보면 그때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면서 소리를 기록한다는 것이 참 특별한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또 한 가지 기억은 부산에 가서 가야금 하시는 신명숙 선생님의 목소리를 녹음했던 거다. 그분이 강태홍 명인의 마지막 직계 제자인데 그 분과 인터뷰를 하면서 국악에서 구음이 얼마나 중요한 전승방식이었고 그것이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변질되었는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 인터뷰를 계기로 가야금 연주자 고지연씨와 가야금과 구음에 대한 작업을 하기도 했다.
현재 미술작가로도 주목받고 있지만 여러 매채와의 인터뷰에서 밴드를 했던 음악가로서의 정체성이 본인의 작업의 기본적 태도라는 이야기를 했다. 본인이 생각하는 음악가적인 태도 혹은 관점이란 어떤 것인가?
나는 음악은 혼자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기계의 도움을 받아서 혼자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음악은 기본적으로 함께하는 것이 전제가 되고 그때 내가 경험한 밴드라는 형태에 가장 이상적인 협업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밴드 활동 이후에도 누구랑 협업하는 일을 하고 있긴 하지만 밴드를 하던 시절에 소리를 통해 소통하고 합을 맞추고 했던 창작 방식에 큰 감명을 받았다. 혼자하는 것이 아니고 혼자만을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그 안에 진짜 예술의 요체, 예술 창작의 요체가 있다는 깨달음이었던 것 같다. 음악을 하면서 생기는 공평한 관계도 좋았다. 그렇지 않은 밴드들도 있겠지만 흔히 밴드라고 하면 서로 공평한 입장을 가지고 수입도 공평하게 나누는 굉장히 독특한 협업형태를 가지고 있다. 서열을 벗어나 공평하게 대화했던 경험들을 이후에도 곱씹게 된다. 또 음악가의 태도 중에서 끝을 보고 달리는, 멈추지 않는 광기 같은 것들도 예술가에게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그때 많이 느끼고 배웠다.
국립현대 미술관 2023년 <올해의 작가>전 인터뷰 영상에서 본인은 평생 하나의 작품을 만들고 있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집에 오면서 원더버드 1집을 다시 들었는데 전시장에서 만난 작품의 제목들이 노랫말로 들렸다. 평생 만들고 있는 하나의 작업이라는 말이 순간 이해되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타자’, ‘이방인’에 대한 작업을 많이 해왔는데 평생 가지고 갈 작업의 테마라고 볼 수도 있는가?
지금까지 굉장히 많은 부분을 이방인이라는 주제에 할애해왔다. 이방인은 결국 경직된 한국 사회에 대한 이야기다. 한국은 이방인에 대해 굉장히 폐쇄적인 사회이고 지금도 더 폐쇄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서 그 얘기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효과가 없으니 더 자극적으로 해보겠다고 하다가 로봇까지 간 건데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로봇은 앞으로 계속 생길 거고 우리와 함께할 이웃 같은 거다. 지금은 로봇 청소기와 식당 서빙, 이 정도지만 집에 몇 개의 로봇들이 같이 있고 반려 로봇과 함께 살아가는 그런 때가 몇 년 안에 올 거라고 본다. 그런데 사람들이 로봇에게는 오히려 정을 쉽게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내 말 잘 듣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하니까. 아무튼 이 한국인의 배타성에 대해서는 계속 다룰 주제 같긴 하다. 물론 다른 주제들도 다루게 될 수 있다.
인디씬을 포함해서 대중음악계에서 활동하던 선배 음악가들을 보면 연차가 쌓이면서 프로듀서나 제작자가 되거나 영화나 드라마 음악감독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주변에 그런 동료들도 많이 있었을 텐데 권병준은 좀 더 실험적인 예술가의 길을 갔다. 언제나 주류의 규칙에서 벗어나고자 했다는 인터뷰를 본 적도 있는데, 어떤 갈증이 있어서 작가로서의 길을 가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록 음악에서도 명인이나 인간문화재처럼 자기가 잘 아는 거를 계속 반복하면서 그 모습 그대로 거기에 남아 있는 것이 미덕인 경우가 있다. 근데 내가 배운 음악은 그런 게 아닌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훌륭한 음악가들은 언제나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다 대부분 일찍 죽긴 했지만 그것도 뭔가 한계를 넘어서려다가 폭발한 게 아닐까 싶다. 그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내가 예전에 하던걸 우려먹으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 그게 음악의 정신, 록음악의 정신이 아닐까 생각한다.
유학을 가서 음악과 관련된 테크놀로지를 배웠다. 전통적인 작곡이나 연주가 아닌 기술적인 부분들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있었나?
기술과 결합한 음악, 이를테면 컴퓨터를 가지고 전자음악을 만드는 실험은 그 전부터 계속 해오긴 했다. 그걸 좀 더 체계적으로 공부를 해보고 싶어서 유학을 갔다. 근데 막상 가보니 그런 음악도 이미 서양 현대 음악의 한 부류로 정착이 되어서 또 다른 주류로 자리 잡은지 오래여서 그런 부분들에 좀 답답함이 있었다. 그런건 내 기질상 맞지가 않더라. 기술을 좀 더 다른 방향으로 확장하고 넓히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독일의 스타임(STEIM)에서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있었던 분과의 이름이 예전에는 Image and Sound였는데 그게 Art and Science로 바뀌었다. 처음엔 시각과 청각에 대한 작업 위주로 하다가 점차 기술과 결합된 공감각적인 작업이 본격화 되던 시기였다. 그러다 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그런 작업들을 하게 된 것 같다.
스타임(STEIM)에서 하드웨어 엔지니어로 일하고 로봇 작업도 오래 하셨는데 그런 이력만 보면 도저히 범접하기 어려운 기술로 보인다. 하지만 작업을 자세히 살펴보면 오히려 구하기 쉬운 재료들로 접근이 편한 기술들을 사용한다는 느낌도 받는다. 재료와 기술을 선택하는 본인의 관점에 대해 이야기 해줄 수 있나?
사실 기술의 범위는 끝이 없고 모든 기술을 공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테크놀로지를 다룬지 20년 정도가 되었는데 아직도 해야 할 게 많고 한참 멀었다. 하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작업은 기술의 향연이 아니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는 것인데 그건 단지 기술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다. 전시든 공연이든 간에 여러 가지 기술이 어떻게 적절히 조합되고 그것이 어떻게 제어 가능한 수준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교육과 지식을 나누는 일에도 관심이 있는데 내가 함께 일하고 있는 친구들이 기술적인 배경이 없어도 보고 만들고 수리할 수 있을 정도로 설계를 하려고 한다. 사람들이 접근 가능하고 또 그 안에서 뭔가를 해 볼 만한 여지를 남겨두는 것도 고려의 대상이 된다. 물론 위치 기반 헤드폰처럼 쉽게 수리하기 어려운 기술도 있긴 하다. 아무튼 화려한 기술보다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적정 기술을 적재적소에 잘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021년에는 부산 시립미술관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소리 작업을 하기도 했다. 어린이를 위한 소리 작업을 할 때는 어떤 부분들을 고민했는지 또 실제로 어떤 경험을 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듣는 것도 훈련이 필요한 일이고 음악 교육은 소리를 어떻게 들을 것인지에 대한 것을 포함한다. 그런데 요즘 어린이는 생각보다 빠르게 듣는 방법을 잃어 버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예전에 어떤 워크샵에서 어린이에게 헤드폰으로 지리산에서 녹음한 소리를 들려준 적이 있다. 한적한 마을에서 개도 짖고 새도 울고 하는 자연의 소리였는데 무슨 소리가 들려냐고 물어보니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고 했다. 어린 아이에게도 그 소리는 벌써 무시할 수 있는 아무 소리도 아닌 게 된 거다.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의 아이였는데 그 때만 돼도 벌써 미디어에 노출이나 여러 교육들로 원래 가지고 있던 감각들을 잃어 버린다. 그래서 부산에서 작업할 때는 더 어린 친구들을 타겟팅 했었다. 그 친구들을 위해 여러 개의 스피커를 이용해 입체음향을 만들어 들려주는 작업을 했는데 어른들 보다 더 유심히 잘 듣는 아이들 있었다. 더 어린 아이들의 귀는 아직 열려있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은 필드 레코딩에 대한 질문이다. 여행을 다닐 때 언제나 녹음기를 가지고 다닌다고 했는데 그때 녹음기를 켜는 순간은 언제인지, 마주하는 수 많은 소리들 중 기록할 만한 소리라는 건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자연의 소리에 제일 많이 반응하는 것 같다. 자연 속에서 나는 계속 동심으로 돌아가는 기분을 받는다. 어린 아이가 되어 꽃 주변의 벌을 만나면 그 소리를 녹음하고 있고 폭포를 만나면 그 소리를 녹음하고 있다. 자연 속에서는 계속 그런 마음으로 마이크를 열어놓게 된다. 어떤 곳에서는 도시에서도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가 있다. 예를 들면 이제 대만에서 물소리를 녹음했는데 그게 에어콘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대만은 너무 더워서 집집마다 에어콘을 틀어놓는데 거기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그 도시를 특징짓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현대의 많은 예술가들은 저마다의 기법과 재료들로 자신의 문제의식, 질문을 던지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사운드가 하나의 기법이자 재료로서 동시대 예술에 분명한 인정을 받게 된 것 같다. 권병준 역시 사운드아티스트로 종종 소개되는데, 예술에서 소리가 할 수 있는 역할, 더 잘할 수 있는 질문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가?
소리는 시각적인 것의 대척점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리는 시각적인 것과 우리에게 들어오는 방식이 다르다. 좀 더 직접적으로 마음을 움직인다고 해야하나. 머릿속에서 만들어 놓은 필터나 장치를 거쳐서 들어오는 게 아니고 뭔가 이렇게 쑤욱 들어오는 느낌이다. 또 사람한테는 또 언어의 벽이라는 게 존재하지만 소리에는 말로 할 수 없는 중요한 소통의 가능성이 있다. 어떤 때는 그 말로 할 수 없는 게 굉장히 중요하기도 하다. 창작과정에서는 말을 잘한다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다. 말이 가지고 있는 소통의 한계, 또 시각적인 것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맹점들을 피해서 사람들에게 자신을 돌아보게 할 수 있는 힘이 소리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들은 지금 시대에 굉장히 유효한 일이고 앞으로도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기에 소리에 대한 작업 또한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권병준이 생각하는 지금 현 시점에서 주목할 만한 시대적인 소리가 있는가? 혹은 개인적으로 최근에 주목하고 있는 소리가 있는가?
작업실에 늘 3D 프린터들이 돌아가고 있는데 요즘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생각을 하곤 하다. 어떤 형태를 인쇄하냐에 따라 모터의 움직임이 달라지고 그게 패턴화가 돼어 리듬이 만들어진다. 동그란 모양을 인쇄할 때, 사각형을 인쇄할 때가 소리와 리듬이 다르다. 거의 하루종일 저 소리들을 듣고 있다 보니까 이제는 저 기계들이 내는 소리가 노동요처럼 들린다. 언젠가 저 소리를 가지고 작업을 해봐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공식적인 마지막 질문이 남았다. 약간의 상상력을 요하는 질문인데 이 인터뷰는 음악가에 대한 필드 레코딩이라는 가정을 하고 있다. 어떤 사람에게서 나는 소리를 녹음할 수 있는 마이크가 존재한다면 권병준에게서는 어떤 소리가 녹음될 것 같나?
휘파람, 혹은 음울한 읊조림 같은 게 들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