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동
(퍼커셔니스트, 사운드 아티스트)  

“다양한 형태와 기능을 가진 모루들에서 특정한 모양을 만들어내기 위해 열풀림한 연강판 혹은 연강봉을 단조하며 녹음된 망치질 소리이다.

<Sound object_’the sound of restriction’ series>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녹음된 소리로 궁극적으로 특정한 소리를 갖는 작품이 탄생되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기록의 의미를 갖는다.”




해동한테 의미가 있는 최초의 소리는 무엇인가? 음악적이지 않더라도 의미 있게 다가온 소리의 기억이 있다면 거기에서 이야기를 시작하자.

첫째는 가죽의 울림 소리였다. 서아프리카의 기니아(Guinea)로 가기 전, 아마 한 13~14년쯤 전인데 우연히 방문한 한 스튜디오에서 통나무와 실제 동물 한 마리의 가죽으로 만든 북소리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전까지는 세트 드럼을 좋아했는데, 합판이나 플라스틱처럼 인간이 가공해서 만들어 낸 물질이 아니라 자연상태에 가장 가까운 원재료로 만들어진 악기의 울림이 너무 깊고 형언할 수 없는 특유의 색감이 있었다.  공장에서 만든 악기들하고는 완전히 다르게 다가왔었다. 그 이후로 많은 일들이 순식간에 흘러갔고 어느새 내가 서아프리카 대륙 어딘가에서 악기를 치고 있더라. 누구나 그런 순간들이 있겠지만, 나에겐 그 첫 소리, 울림이 굉장히 의미있는 순간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둘째는 아마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때로 기억한다. 청소년 오케스트라 정기발표회를 우연히 접했는데 그곳에서 들었던 클라리넷 소리가 너무 매력적이었다. 그때 아버지께 한참을 저 악기가 꼭 배우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었고 아버지께서 음악을 전공한 친구분을 통해 오래된 중고 클라리넷을 구해주셨다. 그 후로 몇 년간 클라리넷을 배워서 오케스트라 활동을 했는데, 그때 듣고 연주했던 소리가 나에게 처음으로 다가온 음악적인 소리였다.


유년 시절의 소리 풍경은 어땠나?

음악을 많이 듣는 집안도 아니었고, 가족 중에 음악에 조예가 있는 분도 없었다. 사실 집안에 특별한 소리라고 할 게 없었다. 굉장히 조용했고, 어머니께서는 원래 글을 쓰시다가 나와 동생을 키우느라 주부가 되신 뒤로는 예술 활동을 안 하셨다. 다만 아버지께서 자연을 좋아하셔서 어릴 때부터 산이나 바다로 캠핑을 다녔다. 주말이나 일이 없을 때 아버지와 모닥불을 피우고 캠핑을 하고 바다에서 조개를 잡으며 며칠씩 지내다 온 경험이 많았다. 아버지 덕에 그런 식으로 자연의 소리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았던 것 같다. 지금이야 캠핑장이 굉장히 체계화돼 있지만, 그때는 그저 자연상태 그 자체인 경우가 많았다. 그곳에서 아버지랑 작은 모닥불 피워 놓고 감자도 구워 먹으며 나무, 바람, 계곡, 벌레들의 소리에 둘러쌓인 시간들이 합쳐진 총체적인 경험으로서 소리풍경(Soundscape)에 대한 기억이 많이 난다.


이제 아프리카 이야기로 넘어가자. 가죽 악기의 울림을 따라서 타악기를 배우러 아프리카 대륙으로 향한 건가?

처음부터 바로 서아프리카로 넘어간 건 아니다. 서아프리카 기니아 출신 연주자가 일본에 투어를 왔는데, 그분을 먼저 뵙고 음악에 대한 조언도 듣고, 여러 가지 의견을 여쭙고 싶어 우선 일본에 갔다. 함께 보내던 나날들 중 어느 날 밤 그분께 “네가 이렇게까지 악기와 소리에 대해 진지하고, 진심으로 좋아한다면 일단 아프리카로 와야 된다”고 말씀하셔서 비자를 위한 초대장까지 받고 바로 넘어간 건데 그때만 해도 꼭 어떤 정해진 악기를 배우겠다는 개념이 잘 없었다. 사실 지금에 와서도 내 개인적인 경험에 따르면, 다녀왔던 수많은 지역이나 부족들에서도 악기를 단순히 외형으로만 구분하기보다 소리 그 자체로 받아드리고 구분지어 사용하는 것이 먼저였던 것 같다. 결국 악기라는 물리적인 형태보다는 소리라는 무형의 본질이 더 중요한 게 아닌가 아직까지도 고민 중이다. 그때는 선생님의 짧은 말씀이 그 지역 전통적인 음악 자체가 너무 좋아서 막무가내로 공부해보고 싶다는 나의 마음에 도화선이 되었고, 앞뒤 돌아보지 않고 서아프리카로 떠나게 해 주었다. 여담이지만 그 때는 어렸고 정말 음악만 바라보고 떠난 거라 그곳이 불어를 쓰는 곳인 줄도 몰라서 처음 공항에 도착했을 때 적잖게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그곳에서 지내면서 주로 어떤 소리를 들었나?

내가 지냈던 곳들은 음악과 관련된 계급과 부족들이 많이 모여있는 지역이었다. 잠자는 밤을 제외하고 거의 하루 종일 악기 소리를 들었던 것 같다. 음악을 연주하거나 연습하는 시간 이외에도 저녁 식사 후에 요리해 준 사람한테 고맙다고 한참을 노래 부르고, 일정이 끝나고 나면 사람들이 모여 음질도 좋지 않은 스피커로 댄스뮤직을 틀어놓고 밤새 또 춤추고 노래하다 잠들곤 했다. 그곳에선 술을 마시는 것도 엄격히 금지되어 있어서 음료수를 마시면서 그렇게 연주하고 놀았다. 늦게까지 그런 소리를 듣다가 아침에 일어나면 또 아침이라 고맙다고 노래 부르고 연주하고, 아침을 먹고 나면 같이 음악 공부하자고 연주한다. 정말 꿈같이 하루 종일 음악에 노출돼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시간을 통해 음악가로서 소리, 또는 음악을 대하는 관점의 변화가 있었나?

완전히 달라졌다. 어릴 때는 클래식을 공부했고, 사춘기 때는 CD플레이어에 헤드폰 끼고 다니면서 펑크, 헤비 메탈, 힙합 음반 모으는 걸 좋아했다. 오랜 시간을 서양의 이론을 기준으로 음악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서양의 관점으로 체계화된 소리와 화성에 익숙해져 있다가 좀 더 원초적이고 날것 그대로의 서아프리카 음악을 직접 접하고 난 후의 충격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소리와 음악은 항상 우리 삶 속에 존재한다는 얘기를 어렴풋이 들어본 적은 있지만 막상 그곳에 가보니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주방에서 일하던 어머니들이 갑자기 신이 나서 하던 요리를 멈추고 바가지나 그릇으로 쓰시던 박을 두드리며 연주하시는데 그게 자연스럽게 노동요가 되는 거다. 당연히 날것 그대로의 즉흥 음악이다. 요리할 때 쌀이 부족하거나 쌀이 덜 익었다고 아궁이에 불을 새로 지피며 연주를 시작하면 그렇게 또 한 시간이 이어진다. 그런 상황에 자연스레 계속 노출되니까 스스로 의문을 많이 갖게 됐다. 공부해온 모든 기준점이 무너지고 '음악이란 무엇인가?', '어디서부터가 음악이고 작곡이며 녹음의 이상적인 기준은 무엇인가?' 등의 의문들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로는 타악기 연주자로 활동하면서 칸(Kan), 아이즘(IJM) 등 다양한 팀 활동도 했다. 귀국 후에는 어떤 음악을 하려고 했나?

지금 생각하면 정말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정말 오만하게 한국에서 음악하는 사람들이 모두 가짜라고 생각했다. 서아프리카 여러 지역에서 한국과 다른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보니 손으로 악보를 써서 하는 음악은 진정한 음악이 아니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진정한 음악이 무엇인지 내가 알려줘야겠다는 거만한 마음을 가지고 활동을 시작했다. 아프리카에서 수집해 온 소리나 악기들, 그리고 원초적인 음악과 소리 그 자체에 대한 개념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다시 생각해도 정말 어릴 적의 부끄러운 얘기다. 동시대적인 다양한 소리가 있는 거고 지금 시대의 전통음악이 악보에 기보를 한다고 그게 틀린 건 아니지 않나. 결국에 시간은 흐르고 전통도 끊임없이 현대적으로 발전을 하며 새로운 전통의 역사를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 공부를 더 하며 얕은 경험과 지식으로 편협한 생각에 갇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부끄럽지 않도록 계속해서 개인적인 시각과 생각의 확장을 해나가고 있다.


2017년에 해동성국 프로젝트 솔로 음반 《DOKKAEBI PLAY》를 발표했다. 조금 전에 얘기한 대로 부끄럽기도 한 열정들이 어느 정도 다듬어진 결과물인가?

그 당시에는 즉흥적인 것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바탕으로 자유즉흥음악, 즉흥적인 소리의 본질에 집중하고 있었다. 당시에 베를린에서 연주하고 음악가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상당히 깊이 있는 즉흥음악씬을 직접 목도하고, 다양한 공연에도 참여하며 즉흥음악 관련 워크숍도 들을 기회가 많았다. 일반적으로 실용음악에서 말하는 솔로연주파트의 즉흥연주가 아닌 새로 도래하는 실험적인 장르로서 즉흥음악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집중하고자 했다.

한국과 서아프리카의 민속음악을 공부하며 샤먼이나 제사장 등 의식,의례 등을 진행하는 주체가 사용했던 소리가 악보로 우선적으로 체계화되지 않고 구전되거나 상황에 따라 바뀌는 즉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말씀하신 음반은 흔히 말하는 의식(ritual)이나 세레모니(ceremony) 같은 특정적 상황이 가지는 즉흥성이 지금 내가 다른 연주자들과 교류했을 때는 어떻게 발현이 될 것인지에 중점을 두고 작업한 음반이다. 서아프리카 말리(Mali) 의 한 부족들과 사하라 사막 근처 마을들에 연주여행을 할 때였다. 그들은 특정 연주나 종교적인 의식을 하기 전에 그릇에 숯을 넣고 연주자들이 빙 둘러 앉아 향을 피운 뒤 그 연기로 세수를 했다. 그것이 앞으로 진행될 의식과 음악 연주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 것이다. 이런 다양한 경험들과 특정한 의식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하는 앨범에도 그런 요소를 포함시켰다.


의식이나 세레모니는 솔로 앨범 이후 현재까지 해동의 작업에서 중요한 테마로 느껴진다. 2021년 발표한 작업도 제목도 <죽음과 소멸의 생태계: 사라지는 것들을 위한 세레모니(Ecology of Death and Annihilation: A Ceremony for Things that Wither)> 였다.

내가 작업을 하는 데 있어서 지금까지 가장 중요한 주제중 하나이다. 예술장르의 하나로 명명되기 이전에 최초의 음악은 왜 존재하게 되었을까? 예술로서 소리의 기원은 무엇일까? 에 대한 의문이 있고 그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해오고 있다. 많은 논문을 읽어보고 자료를 찾아보고 있지만 이렇다 할 시원한 답변을 찾을 수는 없었다. 악기는 계속 부식되고, 악보가 기보되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다. 음악에 대한 기록이 명확하게 있지 않기 때문에 아주 먼 조상들이 어떻게 음악을 시작했고 즐겼는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그런데 많은 연구자가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것 중 하나는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서 소리를 사용하기 시작했을 거라는 점이다. 위험을 알리거나 사냥을 위한 소리가 먼저고 즐기기 위한 소리는 더 나중의 일인 것이다. 생존을 위한 소리들이 삶 속에 하나씩 정립 되다가 일종의 예술로서 표현되기 시작한 형태가 의식 혹은 세레모니같은 형태였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가뭄이 들거나 큰 재해가 나면 꼭 의식을 지냈는데 힘든 상황을 이겨내려면 사람들이 좀 미쳐서 간절히 기원해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너무 힘드니까 미친 상태를 만들어 간절한 염원을 전달하도록 하는 게 소리와 음악의 역할이었을 것이다.  태초부터 의식에 사용되었던 소리, 냄새, 빛, 움직임 들의 수많은 제의적 요소들이 발전되어오며 예술의 기원이 되었다는 관점 하에 후각 예술가 김이단과 함께 새 작품을 발표했다. 예술의 제의적 기원에 초점을 맞추며 동시대적 의식에 대한 고찰을 담아 작업했다.


2020년에 〈소리 의식 Sound Ritual〉이라는 사운드 전시를 했다. 전시 서문에서 숭고함의 경험을 위축시키는 도시에서 소리를 통한 숭고함의 회복을 이야기한 것이 인상 깊었다. 우리가 소리를 통해 경험할 수 있는 숭고함이란 어떤 것일까?

칸트는 인간이 장엄함을 느끼는 순간과 숭고함과의 관계성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인간은 두려움이나 무서움을 느낄 만한 상황에서 숭고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엄청나게 거대한 에베레스트 산맥 앞에서, 혹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대양 한가운데서 느껴지는 두려움 같은 감정이다. 실제로 내가 아프리카대륙에서 놀라울 만큼 거대한 바오밥 나무 앞에 섰을 때 그런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럴 때 인간은 새로운 차원으로 공감각이 전이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시간이 다르게 흐르고, 공간을 다르게 인식하며 작은 바람 소리 하나까지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그런 순간 말이다.

내가 이 전시를 준비할 당시 세계 각지의 외딴 자연 속에서 방목되던 동물들의 목에 매어져 있는 방울(종)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 소리에 매료되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듣다보면 오랜 시간 그곳에 무심히 존재해왔을 소리의 울림에 감각이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오는 숭고함을 개인적으로 재구조화한 소리를 통해 사람들에게 제시하고자 했다. 즉 지금 우리가 머무는 이 도시에서도 그러한 숭고함을 경험할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대자연이 아니더라도 놀랍도록 큰 건물들 사이에 있을 때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평소에 시끄러워했던 소리들도 어느 순간 너무 멋있고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일상적인 소리의 풍경 속에도 그런 의식(ritual)적 요소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런 감각이 음악가가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 했다. 예술가들이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존재했던 대상을 조금 다르게 바라봐 왔듯이, 일상에 존재하던 풍경에 재 미있는 터닝 포인트를 준다면 그 안에서도 숭고함을 느낄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SOUND RITUAL 소리의식>에서는 전자 장비들이 만드는 화이트 노이즈와 솔레노이드가 계속 철판을 때리는 물리적인 소리가 존재하고, 그 풍경 속에 카우벨을 함께 설치했다. 사람들이 한 가지 소리만 집중해서 들을 때 결코 아름답기만 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인지되지 못한 채 주변에 존재하는 여러 소리들을 종합적으로 감각할 때 느껴지는 새로운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나는 작업에서 생태계(ecosystem)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특히 '소리 생태계(Sound ecosystem)'라는 말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는데, 꼭 소리 명상(sound meditation), 소리 목욕(sound bath) 등의 특정 장르보다도 자연에 갔을 때 풀벌레와 새의 울음, 나무의 흔들림, 인간들의 이야기 소리, 모닥불 타는 소리, 멀리서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 등이 혼합되어 이루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들리는 소리 생태계(sound ecosystem)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소리들 또한 생태계속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예를 들어 보통 사람들이 흔히 아름답다고 하는 새 소리, 계곡 소리도 산속에서 살다보면 때론 그렇게 시끄러울 수가 없다. 흔히 아름답게 여겨지는 소리도 생태계 속 조화로움이 먼저인 것이다.



점점 소리에 관한 해동의 관점이 이해되는 느낌이다. 〈SOUND RITUAL 사운드 리추얼〉에서도 그렇고 그 이후의 작업들을 살펴보면 지속적으로 카우벨이나 금속을 이용한 작업을 하고 있다. 타악기의 재료는 나무나 가죽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금속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있는가?

금속 소재의 작업 사진을 많이 올리고 공개해서 그렇지 다른 여러 재료들도 사용한다. 좀 더 자연에 가깝거나 날것의 원재료에 관심이 많이 있다. 지금까지 소리나 음악을 계속 공부해 온 과정에서 당연히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태초에는 가공되지 않은 재료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으니 동물의 뼈로 피리를 만들어서 피리를 불고, 버려진 나무들을 두들기는 것으로 악기의 역사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특히 소리의 기원을 찾으며 접해온 수많은 사람들과 지역들 에서 만난 원초적인 형태의 악기들은 나에게 강렬한 영감을 주고 재료들을 바라보는 관점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최근 금속 재료에 더 집중하고 있는 이유는 그것을 다룰 때 느낌이 좋기 때문이다. 금속 성형을 위해 망치질할 때 오는 전율은 그 어떤 타악기 연주보다 보다 강렬하다. 대장장이들이 수만 번의 망치질을 통해 물건을 만들어낸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것이다. 진짜 수만 번 망치질하지 않으면 모양이 잡히질 않는다. 반복적으로 망치질을 할 때 느껴지는 온몸의 떨림은 타악기 연주자가 악기를 두드리는 것과 또 다른 형태의 전율을 선사한다.

더 나아가서 나 자신을 가다듬는 하나의 수행, 명상적인 역할도 포함된다. 최근에는 하나의 일상적인 루틴으로 매일 망치질을 통해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기본적인 소리 나는 형태를 만들기 위해 하루에 최소 여섯 시간 정도 망치질을 한다. 망치로 두들겨 형태를 잡고 소리까지 담아내도록 가르침을 주신 분이 한국에 계시다. 첫 만남에 한 산골마을 부족에서 만들어진 수십년도 더 된 카우벨을 들고 가서 이 종을 제 손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웃으시면서 망치질이 결국에는 타악 연주의 끝이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분의 꿈은 자기가 망치질 소리를 내면서 악기를 완성해 나가는 동안 꽹과리나 다른 타악기 연주자가 함께 연주하는 공연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이분이야말로 내 선생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리카에서 음악 공부를 하고 더 찐득한 흑인 음악의 길을 가는 방향성도 있을 텐데, 최근 행보를 보면 흑인 음악의 그루브를 따라가는 방향하고는 매우 달라진 것 같다. 이제는 사운드 아티스트라는 말을 더 자주 들을 것 같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미디어 아트’처럼 형태 자체에 ‘아트’가 붙은 단어는 좀 의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아트'라는 단어를 무조건 붙이는 건 좀 의심스럽게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사운드 아티스트'라는 단어를 많이 쓰지 않는다. 다만 내가 사용하지 않아도 누군가 그렇게 나를 규정 짓기도 한다. 내 관점에서 그 단어를 쓰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연주와 청취를 핵심으로 보는 음악과 설치와 시각적 전달을 중요시 하는 사운드 아트를 다른 장르로 구분 짓는 경향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내 개인적으로는 어떤 작품이 소리를 매체로 사용한다면 장르를 나눌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소리를 재료로 작업하는 사람을 통칭하는 의미로 그 말이 점점 보편화되고 있다면 익숙해져야할 것도 같다.


그렇다면 음악가 또는 타악 연주자로 작업할 때와 설치 작업을 할 때 해동의 태도나 문제의식은 결국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가?

크게 다른 선상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음악가로 소개가 되는 것과 사운드 아티스트로 소개가 되는 것 혹은 그냥 이해동으로 소개가 되는 것 어떤 방식이라도 개인적으로는 상관이 없다. 그것은 나를 소개하고 비평을 하시는 분들의 영역이신 것 같다. 스스로는 나를 단지 소리를 재료로 혹은 영감의 원천으로 다루는 작업자라 생각하고 있다.


주관적으로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소리가 있나?

의도하지 않은 소리는 대부분 싫은 것 같다. 아침부터 나를 깨우는 새소리라든가 도시 한복판에서 사람들이 싸우는 소리처럼 내가 막을 수 없는 소리를 싫어한다. 사실 기준이 애매한데, 내가 놓인 환경에 따라 같은 소리도 좋아지고 싫어지는 것 같다.


지금까지 한 이야기만 들으면 아프리카에서 소리에 관한 숭고한 경험을 하고 원재료들이 주는 소리의 근원을 탐구하며 망치질까지 하는 사람으로 읽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전자 음악과 모듈러 신시사이저도 다루지 않나. 전자 악기에 매력을 느낀 계기는 무엇인가?

지금 떠올려 보자면 시작은 한 명의 음악가 때문인 것 같다. 몇 년 전에 돌아가신 나나 바스콘셀로스(Nana Vasconcelos)라는 전설적인 음악가가 있다.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의식(Ritual)의 순간들을 기록해온 영상감독 빈센트 문(Vincent Moon)이 한 프로그램에 나와서 본인의 작업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함께 소개하고 싶다며 나나 바스콘셀로스를 초대 하여 약 20분간 연주를 부탁드린 적이 있다. 우연히 그 영상을 봤는데 세련될 것 하나 없는 날것 그대로의 원초적인 악기들을 가지고 연주하시는데 맨발로 이펙터 페달을 밟으며 소리를 만들어 가시는 것을 보았다.

아마존에서 저렇게 원초적인 소리들과 함께 작업하시는 나이드신 연주자도 편견 없이 전자 장비를 쓰시는데 감히 내가 아날로그적인 악기만을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하며 처음으로 페달을 사봤다. 그게 보스(Boss)사의 디지털 딜레이였고, 그 페달에 대해 공부한 게 전자장비를 작업에 도입하게 된 첫 번째 계기였다. 그분이 연주했던 영상들을 찾아보면서 타악기를 위한 이펙터의 세팅 값을 알아내고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시작이었다. 그 뒤로 일본이나 독일 등 여러 지역 에서 다양한 음악가들과 교류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전자장비들을 접하고 공부할 기회가 생겨났다. 사실 악기의 원형이라는 개념은 의미가 없고 지금 만들어지는 모든 것이 이후에는 또 다른 악기의 원형이 되겠다는 생각 아래 장비 자체에 대한 편견을 지워나갔다.


이 인터뷰를 포함한 내 작업도 결국 비슷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배경이 다양한 소리들이 만나 동시대의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해동이 생각하는 컨템퍼러리란 무엇인가?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소리의 기원을 쫓아서 작업을 이어 가고 있지만, 그 작업들이 결국 컨템퍼러리 아트로 소개되고 있다.

사실 현재 공부하고 있는 대학원 전공의 이름도 'Contemporary Art Practice'다. 아직도 공부하고 알아가야 할 부분이 너무나 많지만 개인적으로 동시대적인 작업이라고 한다면 음악이든 미술이든 아니면 다른 장르이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사회적인 얘기들을 많이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심각한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문제와 6차 대멸종의 도래, 파괴적인 욕망으로 인한 잔혹한 전쟁, 급격한 인구 감소로 인한 사회문제 등 시대적인 상황을 많이 반영하고 있는 게 소위 동시대적인 예술작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초기에는 작업물에 정치적, 사회적, 철학적 성향을 과도하게 반영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기피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사변적이지만 오랜 시간 고찰해 온 미학적 관점들을 작업에 녹여내어 보여주는 것 또한 작업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이와 함께 동시대에 상응하는 새로운 악기와 녹음 장비를 도입하고, 동시대적 관점에서 소리를 연주하고 해석하며 진보적인 방식으로 세상에 보여주는 모든 것들이 contemporary art의 과정이라 생각한다. 사회적, 철학적 주제 의식 뿐만 아니라 동시대의 환경 속 매체들과 함께 만들어지는 작업의 과정도 중요하다고 본다.


해동은 스스로 어떤 시대나 공간에 강한 영향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가?

나에게 시대란 굉장히 의미 있는 주제다. 소리가 음악이라는 예술분야로 처음 정립되었던 시기에 대한 고찰을 통해 여러 작업을 구현해왔다. 그 시대가 정확히 언제인지 정립할 수는 없지만 인간종이 진화해 오면서 악기라는 것을 손으로 만들고 사용해온 시간들에 대한 관심이었다. 서아프리카에 있을 때 많은 연주자들이 항상 이건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전부터 전래한 것이라고 이야기 했던 것들이 큰 영향을 주었다.

현재는 인간이 파괴적인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고, 현 인류세(anthropocene)를 이끌어오는데 '소리'가 주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관점을 가지고 소리가 문명사에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이용되어온 맥락을 탐구하며 작업을 해 나가고 있다.


해동의 무의식에 자리하는 소리를 수음할 수 있는 가상의 마이크가 있다면 어떤 소리가 녹음될 것 같나?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목소리 혹은 괴성. 개인적으로 그 소리가 인간종이 처음 내었던 소리였을 것 같다. 크게 소리 지르면서 뭔가를 위협하거나 쫓아냈던 소리랄까? 태초에는 자신의 목소리를 악기로 삼아 첫 소리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 악기를 사용할 새 없이 바로 몸으로부터 나오는 원초적인 소리다. 나에게도 그런 소리가 먼저 날 것 같다.